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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학생들의 영원한 선생님
김해합성초등학교 한국어학급 담당 김영미 선생님
김해시는 도내 지자체 인구수 대비 다문화 학생 비율이 가장 높다. 도 교육청이 운영하는 다문화교육 특별(한국어)학급은 도내 전체 32학급 중 21학급(65.6%)이 김해 지역 유·초중고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 중 2017년부터 김해합성초 한국어 학급을 담당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다문화 교육에 힘써온 사람이 있다. 올해로 교직 생활 33년차, 김영미 선생님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다문화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를 움직이게 하는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해 다문화교육 특구’* 운영이 시작된 9월, 작은 세계와 같은 한국어학급 교실의 문을 열어보았다.
《김해 다문화교육 특구》
학교-교육청-지방자치단체-민간단체 등 지역 교육공동체가 연계하여 다문화 학생과 비(非)다문화 학생의 전인적 통합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만들고, 김해 지역의 특색에 맞는 다문화교육 협력 모델을 창출하고자 운영하는 다문화교육 지원 사업
한국어학급은 하나의 작은 세계
김해합성초는 전교생의 57%가 다문화 학생이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시리아 등 총 16개국 이주 배경을 가진 학생들로, 다문화 학생 중 85% 이상은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외국인 학생’이다.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작은 세계인 셈이다. 김해합성초는 다문화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과 학교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2016년 한국어학급 1개 반을 개설(2019년 2개 반으로 증설)했다. 김영미 선생님은 2017년부터 한국어학급 담당 교사를 맡았다.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는 1학년 담임을 맡았어요. 제 반에 다문화 학생이 몇 명 있었는데 할 줄 아는 한국어가 ‘한국어를 몰라요.’뿐이었죠. 그동안 베테랑 교사라고 자부했는데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그 생각이 무너진 거예요. 그때부터 다문화 학생들을 한 그룹으로 모아서 ㄱ,ㄴ,ㄷ부터 가르치고 다른 학생들은 1학년 교과 수업을 동시에 진행한 거죠. 정규 수업만으로는 부족해서 방과후에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문화교육’에 관심이 생겨났죠.”
현재 한국어학급은 40여 명의 학생이 함께하고 있다. 원적반에서 정규 수업 4시간을 듣고 한국어학급에서 2시간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이중언어 강사를 포함한 6명의 강사와 담당교사 2명이 맡는다. 학생들의 모국어와 문화가 모두 달라 수업 지도에 어려움이 있지만, 김영미 선생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 개별 맞춤형 학습을 지원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점도 선생님에겐 큰 장벽이 되지 않는다. 서로 진심으로 통하고자 하면 장벽은 언제든 낮아질 수 있다.
“한국어를 모르는 채 교과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무기력해지죠. 그런 위기를 맞지 않도록 작은 것부터 천천히 해나가려고 해요. 조금씩 나아지며 느끼는 성취감, 그를 통한 자기 효능감을 잃지 않는 것이 학습을 계속하는 힘이 되니까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주고, 그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일. 그게 교사인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01 방과후 한국어학급에서 보충 공부를 하는 학생
02 선생님께 공부를 가르쳐달라며 찾아온 졸업생들
아이들의 충분한 가능성을 믿는 교육
김해합성초에서 한국어학급이 문을 연 지 7년 차. 초반에는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교육했다면 최근에는 모국어를 함께 학습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러시아어 선생님을 초빙해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같은 수준으로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중 언어 습득은 그 자체로 학생들의 강점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일도 한국어학급의 중요한 역할이다. 심리 상담, 학부모 상담뿐 아니라 진로 교육에도 힘쓴다. 올해는 방과후 활동을 통해 다문화 학생들이 ‘부울경창업경진대회’ 본선에 진출하도록 도왔다. 다국적팀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각 나라의 문화를 바탕으로 아이템을 개발해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외부 활동을 통한 사회적 지지를 경험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 고립감, 학습 격차를 채울 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죠.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 선배를 초청하는 등 아이들에게 롤모델을 보여주는 노력도 계속해요. 그들을 통해 긍정적인 꿈과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요.”
김영미 선생님은 말한다. 처음엔 다문화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 그저 안타까움이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처음엔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우리 아이들이 가진 능력과 가능성이 너무커요. 다문화 학생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라나면 그들이 경험한 다양한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세계를 더 풍성하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무역 중심 사회인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겠죠. 그러니 이 아이들의 장점에 주목하자, 더 잘 키워내보자 다짐하죠.”
03 아이들의 성장에 아낌없이 칭찬해주시는 선생님
04 차근차근 한국어와 수학을 배우고 있다
햇볕과 바람, 빗방울 같은 선생님
평일 오후 4시. 인터뷰 도중 인근 중학교로 진학한 졸업생 다섯 명이 한국어학급 교실로 찾아왔다. 그중엔 김영미 선생님이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학생도 있다. 중학교 공부에 어려움을 느낀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선생님의 흔쾌한 수락과 함께 학생들은 일주일에 두번, 하교 후 찾아와 서너 시간씩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간다.
“한창 놀고 싶고 예민한 시기인데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너무 기특해요. 제 개인 시간을 쓰는 일이지만,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오는지를 아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힘들어도 그만큼 수백 배의 보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열정적으로 다문화 교육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건 학교의 지지 덕분이라고 김영미 선생님은 말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장 선생님과 동료 교사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김해합성초는 학생들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다문화 교육을 운영 중이다. 2021년에는 다문화 학생 통합성장 지원 영역 연구학교(교육부 선정, 2년간 운영)로 지정됐다.
“초반에는 다문화 학생과 보호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제가 직접 두 발로 뛰어서 알아보고, 제가 가진 것을 덜어주는 방법으로 그들을 도왔어요. 그런데 몇 년 사이 다양한 시스템이 마련돼서 마음의 부담이 훨씬 줄었죠. 2019년 이전엔 외국인 학생은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지역 병원의 도움으로 학교 내에서 다문화 학생과 보호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가 열려요. 그동안 노력한 덕분에 우리 학교가 다문화 학생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모델이 되고 있지 않나 뿌듯한 마음입니다.”
목표가 있다면 남은 교직 생활 동안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힘쓰는 일이다.
“제가 7년 동안 현장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원하는 누구에게라도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현장을 떠나더라도 한국어학급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다문화교육에 열정적인 전문 인력이 더 많이 양성되기를 바랍니다.”
김영미 선생님은 다문화 학생들을 추운 겨울 나무의 성장과 비유했다. 여름에 나무는 빠르게 성장하는 대신 무르지만, 겨울에는 느린 만큼 단단해진다. 그처럼 이제 막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한 아이들의 성장이 지금은 다소 더딜지라도 단단한 나이테를 만들며 고유한 개성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나무의 성장에 필요한 햇볕과 바람, 비를 떠올려본다. 아이들에게 김영미 선생님은 따뜻한 햇볕이자 바람, 자신들을 자라게 하는 빗방울로 기억될 것이다.
글 김달님 사진 백동민 일러스트 황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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